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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미쉘 자우너, 가족과의 이별.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 리뷰

by 읽고쓰는사람 2023.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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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장 친밀한 사람. 나의 모든 역사를 보고 겪은 사람. 어쩌면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일지도 모르는 사람.

엄마.


엄마라는 이름은 왜 부르기만 해도 벅차오르는 것일까
어릴 적 엄마는 나의 굳건한 바위이자 산이었는데
부쩍 약해진 엄마의 모습에 마음이 아린다.

H 마트에서 울다를 읽으며 정말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을 대리체험한 기분이다. 사실 듣다가 중간에 울음이 터져서 몇 번 멈추기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엄마는 죽을병에 걸린 게 아니다. 엄마는 살아있다는 사실이 내게 얼마나 큰 안도감을 주는지. 그러나 오디오북을 읽으며 엄마와 이별할 시간이 언젠가 온다는 사실.
외면해 왔던 묵직한 진실을 맞닦드렸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

엄마는 평생 내 곁에 계시지 못한다.
나의 시간이 빨리 가버릴수록 엄마와의 시간도 가버린다. 서른이 넘고 심란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마흔을 향해 달려간다. 어릴 적 막연히 마흔이면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그 말은 틀렸다. 마흔이 불혹이라니.
흔들리지 않기는 무슨. 조그만 바람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 모습이 아직 아이 같다는 생각만 든다.

미셀 자우너 작가님의 섬세한 묘사. 가끔 묘사가 너무 사실적이고 솔직해서 이렇게까지 자세히 적은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굳이 독자만 생각했다면 이렇게까지 길게 어떤 색인지 어떤 재질인지를 알려 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다 작가님은 흘러가는 기억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옅어지게 마련이니까.
당시에 받은 충격이 내내 리와인드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기억은 조금씩 조작되기도 한다.

내 생각이 틀린 걸 수도 있지만 작가님의 평생 이 기억을 잊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엄마의 마지막. 그때 느꼈던 감정. 엄마가 돌아가신 후 집안의 공기 등등. 모두 붙잡고 두고 싶으신 건 아닐까.

나는 지극히 회피형이라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작가님이 그렇기는 건 아니지만) 힘든 일이 닥치면
전기 차단기를 내린 것처럼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이
가능했다. 마음이 심하게 고통스러우면 그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그나마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난 분명 회피부터 할 거니까 그렇게 되면 내 기억은 희미해져 갈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그 기억은 강렬하게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때 나는 기록하겠지.
열심히 디테일을 찾아 하나하나 빠르게 적어버린 후
영영 덮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봉인.
봉인을 한 후 엄마가 그립거나 엄마 생각이 나면
그 책을 열어보고 맘껏 그리워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도 몇 년이 걸릴 것을 장담한다.

한국인 엄마 미국인 미셀


나는 내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은 없다. 캐나다에 이민 와 서 10년째 살고 있는데도 그렇다. 시민권을 안 따서 그런 거라기보다 그냥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다. 한 번도 내가 캐네디언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작가님은 외모부터 다르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사람은 언제나 어딘가에 속하길 원하니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외로운 마음이 들 것이다. 특히 미셀은 엄마로부터 정체성을 찾은 부분이 많기 때문에 더더욱 엄마의 빈자리가 컸을 것이다. 나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존재만으로 충분한 엄마.

책을 들으며 많은 부분에 공감할 수 있었다.
재패니스 브렉퍼스트라는 밴드의 노래도 찾아보고
들어보니 좋았다. 얼마나 자주 들을지는 의문이지만
책은 내 기억 속이 영원히 남을 것이다.

H 마트에 가면 자연스럽게 떠오르겠지
제목 하나 잘 지었다. H 마트와 한국 문화.
한국인의 소울푸드. 음식의 힘은 얼마나 대단한지.
작가와 일면식도 없지만 나와 같은 음식을 먹고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친밀감이 들었다.
잣죽이 먹고 싶어졌다. 망치여사의 유튜브도 오랜만에 다시 가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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