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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이민자의 일상

산후 우울증의 실체?

by 읽고쓰는사람 2022.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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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물론 호르몬의 탓을 할 수 있겠지
이 모든 게 다 호르몬 때문이라고
그렇지만 그러기엔 내 마음이 여전히 불편하다.

우울증이라고 단정 짓기엔 너무 미약하지만
갑자기 터져 나오는 울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난 사실 그렇게 울 정도로 우울하지는 않다.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날까. “내”가 없는 삶이 무서워서?
나는 유독 책임지는 것을 어려워했다. 남편과 결혼 전 10년 동안 연애한 이유도 결혼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결심하는데 10년이 걸렸고 중간중간 헤어질 위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적응하는 게 더 힘들 것 같았고 헤어지기엔 지난 10년 간의 세월이 아쉬웠다. 그리고 어쩌면 10년의 세월이 보증된 관계였다. 헤어질 뻔했지만 헤어지지 않고 이어져 온 우리의 역사. 화려하고 깨끗한 줄. 새것에 끌리지 않는다. 나는 항상 낡았지만 오래된 줄을 잡았다. 그래도 10년간 사고가 없었던 줄이니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잡았던 줄이니 괜찮을 거라고. 확률상 안전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생각의 오류 일 수 있지만 적어도 인간관계에서만큼은 오래된 관계가 제일 안정감을 준다.

나처럼 불안으로 가득 찬 인간에게 오빠는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머물러주었다. 나는 그런 모습이 좋았다.
겉으로는 센척하지만 속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는 내 내면을 들키지 않길 바랬다. 나와 같은 사람은 싫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에게서 나와 같은 불안을 보았을 때, 결핍을 볼 때 견디기 힘들었다. 약한 모습이 보일 때 나는 감싸주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결국은 다른 단단한 사람을 찾아가곤 했다. 나는 나 혼자도 벅찬 사람이기에…
그래서 육아를 유독 힘들어하는 것 같다.
아가를 보면 너무 예쁘다.
내가 이 작은 생명을 지킬 수 있을까 항상 불안하다.
난 여태껏 진득하게 생명을 키워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죽어나간 열대어 무리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엄마 열대어는 자기가 낳은 새끼들을 먹어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물고기라도 용서할 수 없다. 내가 힘든 기분이 드는 것이 용납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원했던 아기. 아니 원하지 않았어도 낳기로 결정한 아기. 책임을 져야 하는 소중한 생명. 아기를 보면 행복한데 왜 산후우울증에 걸린 걸까
이렇게 작고 귀여운 아기가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는데. 나는 왜 죄책감이 들지? 딩크로 살자 오빠한테 말했을 때도
제대로 하지 못할 거면 안 해
특히 생명과 관계된 거라면
내가 잘하지 못할 것 같아서
모성애가 없을 게 뻔해서
나는 나 혼자도 벅찬 사람이니까.

오빠는 자기가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그 말을 믿었다. 성실한 사람이니까.
전통적인 가정의 모습을 꿈꿔왔던 사람이니까. 약간의 실망감도 산후 우울증의 원인이다.
남편들은 다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잘해도 나만큼 하긴 힘든 것 같다.
내가 하루 종일 집에서 아기를 보니까
내가 더 능숙한 것은 당연한데
자꾸 기대하는 게 문제다. 아가 콧물을 빼고 얼굴 손을 씻고 로션을 바르고
두상이 이상하게 될까 베개를 주문하고
밥을 먹다가 순간순간 아가가 질식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몇 번씩 아가를 살피고
기저귀를 갈고 옷을 갈아입히고
자동으로 나오는 분유 기계에 분유 넣고
물을 넣고 씻고
공갈 젖꼭지를 수시로 소독하고
그런 사소한 것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잘하길 바랬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일하고 오면 힘들어하니
그 마음도 이해가 돼서 조금만 쉬어라고 했는데
남편은 내게 그런 배려를 베풀지 않는 것 같아
힘들었다. 사실 내 잘못도 있다.
남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나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웠으나 남편은 몰랐거든
나는 내 기준에서 남편에게 뭐라고 하기만 했던 것 같다. 가르쳐줘야지. 혼자 볼 기회를 줘야 한다.
닦달하지 말아야지 어느 순간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는
나를 발견하면 슬프다. 나 이런 사람 아닌데.
잔소리 내가 듣기 싫어서 절대 안 하는 사람인데.

새로운 내 캐릭터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남편은 말했다. 내가 지금 현실이 벅차서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다고.
그런 걸까? 나는 나 자신이 여전히 스무 살 철부지 같은데 그런 모습이 좋았다. 호기심이 가득하고 열정이 많았던 나의 모습.
그런 내가 아가를 키우게 되다니.
엄마가 되다니.

아직 나는 엄마라는 이름이 어색해
우리 엄마는 누구보다 헌신적이셨다.
전업주부로 매일 아침 따뜻한 찌게
반찬이 세 개 이상이었다.
나는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이상적인 엄마
우리 엄마 …
엄마만큼은 절대 하지 못할 거야.
우리 엄마가 너무 대단하게만 느껴지는 날이다.

산후우울증의 실체는 아마 완벽주의(?)
너무 잘하려고 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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