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 우울증이 생각보다 오래가는 느낌이다.
나는 가족력이 있어서 더 조심해야 하고
예술가(?) 뇌 때문에 생각이 지나치게 많아서
걱정이다. 성인 ADHD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충동적인 면이 있고 감정이 주제가 안 될 때가 많다.
이전에 내가 일을 미루지 못한다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불안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에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며 ADHD가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한 번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면 무조건 하고야 마는 성미. 내가 그렇다. 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지금 당장 해야지 참고 있다가 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갑자기 머리를 자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해야 한다. 그래서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무조건 당장 해야만 한다. 다시 산후우울증 이야기로 돌아와서
문제의 발단은 이랬다.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3시 30분인데
바로 늦은 점심을 먹겠다고 했다.
다 좋았다. 하루 종일 못 먹는 것도 알고 이해해 줄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서운해지는 이유는 뭘까
남편이 아기를 바로 보러 오지 않았다
나 같으면 퇴근하고 바로 아기부터 보러 올 거 같은데
(우리 집은 타운하우스로 난 주로 3층 안방에서 아가를 본다) 아기를 안 보러 오고 밥부터 먹는 모습이 거슬렸다.
남편이 아기를 더 원했다. 나는 남편이 아기를 낳으면 엄청 예뻐할 줄 알았다. 딸바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생각보다 아가를 귀찮아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눈에 너무 거슬렸다.
그렇게 아가를 원해서 낳아줬더니 저건 무슨 태도지?
라는 생각에 울컥했다.
육아 책을 보니 지금은 애착 형성이 중요한 시기라서
많이 쓰다듬어 주고 안아줘야 할 시기다.
일을 하는 게 힘든 건 알지만 그래도 나라면
나라면 퇴근 후 집에 와서 아가와 인사부터 할 것이다.
이 부분에서 약간 화가 났지만 참았다.
배가 얼마나 고프면 그럴까 생각하고
밥을 먹는 시간이 길었다 30분 나는 지금껏 아기를 낳고 30분 이상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 항상 허겁지겁이다. 밥을 먹다가 아가가 깨면 중간에 달려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니 약간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30분 동안 편하게 먹고 아가 보는 걸 도와주겠지
생각해서 그냥 내버려두었다.
오빠한테 밥 먹고 아기 젖병 좀 씻어줘 했는데
여전히 하지 않았다. 나라면 30분 안에 충분히 밥 먹고 젖병 씻는 것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그래도 그 후에 오빠가 아가를 보고 나는 젖병을 씻고 냄비도 씻고 어묵탕을 만들고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오빠는 아기 우유를 주고 잠깐 놀아주다가
옆에 눕혀놓고 핸드폰을 했다. 그 모습이 급 실망스러웠다. 아가가 옹알이를 하고 소리를 쳐도 아무 반응을 해주지 않았다. 난 밥을 먹으며 반응해주었다.
남편이 과자를 먹고 속이 안 좋았는지
배가 아파서 오늘은 한 시간 일찍 자야겠다고 하는 거였다. 그 말을 듣는데 너무너무 서운해서 눈물이 나는 것 배가 아픈 사람한테 화를 낼 수도 없는데
근데 나도 아프다.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아픈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아직 회음부도 붓고 질염이 와서 항생제 먹고 나니 뱃속에 좋은 유산균도 다 사라져서 배에 항상 가스가 차 있다. 변비도 와서 치질도 심하고.
좌욕도 겨우 하루에 한 번 한다. 남편은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야 해서 8시 반에는 자러 들어가는데 배 아파서 한 시간 일찍 자러 간다는 말이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나는 억울했다. 아파도 아파선 안 되는 나.
차마 아파도 오빠한테 모든 육아의 짐을 줄 수 없어서
그동안 아파도 계속 내 몫의 육아를 계속했다.
근데 배 한번 아프다고 못하겠다고?
고작 한 시간이었다. 사실 그건 아무것도 아닌 거다.
나 혼자 충분히 할 수 있다. 근데 오늘 퇴근하고 와서 본 남편의 행동이 실망스러워서 폭발을 한 것이었다. 요즘 산후 우울증 때문인지 한번 감정이 폭주하면
눈물이 엄청나고 그 여파가 다음 날 까지도 간다.
아가 잘 때 자야 하는데 하필 그때 싸워서
내 신세가 억울해 펑펑 울며 억지로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불면증 때문에 한 시간 반 동안 눈만 감고 누워있었다
열 시에 겨우 잠들었다. 두시 십오 분 아가가 깼다.
5시 이후 낮잠을 많이 자면 아가가 밤잠을 오래 못 잔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남편은 계속 상관없다고 했다.
일찍 재우면 되는 거 아니냐 했는데 나는 잠을 한번 깨면 다시 못 잔다. 그래서 4시간밖에 못 잔 것.
사실 신생아에 비하면 이 정도도 좋다.
잠을 못 자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새벽의 밤
어두컴컴하고 우울하다.
안 좋은 생각이 많이 들고 언제까지 이렇게 뜬 눈으로
밤을 새워야 할까. 백일의 기절이 오면 어떡하지
아가가 갑자기 깨서 울면 어떡하지
아가가 발달이 잘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들에 사로잡히면 잠을 잘 수가 없다.
잠을 못 자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건 이런 우울한 생각들이다.
그래도 배 아픈 사람한테 너무 말을 막 한 것 같아
바로 사과를 했다. 감정이 격해지면 울면서 막말을 하게 되는데 후회스럽다. 난 이런 사람이 아닌데…
왜 감정이 주체가 안될까
산후우울증이 확실하다. 비가 오는 날은 슬프다.
그냥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렇다고 해가 뜨는 날이 즐거운 것도 아니다.
해가 뜨면 억울하다.
놀러 가고 싶어 지는데 갈 수가 없으니까
면허도 없다. 피곤한 남편에게 나가서 놀자고 할 수도 없다. 아가는 차를 오래 타면 피곤해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그냥 견뎌야 하는 시간이다.
견디자 견디자
견디다 보면 해 뜰 날 오겠지 하다가도
이제 겨우 백일인데 생각하면 까마득해진다.
나는 왜 이렇게 부정적일까
남들은 다들 잘 해내는 것 같은데
나만 이런 것 같다.
우리 아가는 순한 아기에 속하는 편인데
나는 왜 힘들지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된다.
산후 우울증 밖에는 없다.
약이라도 먹어야 하나 싶다.
마음의 병은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고
말 안 하면 모르는데
매일 남편에게 징징거리면 남편도 질려할 것 같다.
어제는 아기 낳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기가 너무 예쁜데 아가 없을 때가 더 행복했다. 일하는 것도 좋았고 모든 게 완벽했던 것 같다.
남편이 아가를 원했으니 막상 낳으면 엄청 예뻐해 줄거리는 착각으로, 육아를 엄청 열정적으로 할 거라는 생각을 했던 내가 바보였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잖아. 멍청이
퇴근하고 매일 누워 핸드폰 하는 남편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변할 리가 없잖아.
너무 많이 울어서 볼이 따끔따끔해…
남편은 죄가 없다. 내가 문제다.
나를 잘 알지 못했던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내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한 내가 잘못이다.
언제쯤 현명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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