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일이면 임신한 지 38주가 된다. 출산은 손가락을 마취 없이 자르는 고통과 비견될 정도로 아프다고 한다.
손가락을 마취없이 잘려본 적이 없으므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손가락을 잘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1초라고 하면
출산의 고통은 초산의 경우 10-12시간이 걸린다.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상상할 수도 없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여성들이 출산의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도 크게 위로가 되진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누구보다 겁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1. 치과 공포증
어느정도냐 하면 치과가 무서워서 일 년에 2번을 겨우겨우 간다.
검진을 꼭 가는 이유도 이가 심하게 썩으면 신경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난 한번도 신경치료를 받은 적이 없는데 주변에서 극강의 고통이라고 해서 최대한 피하려고 하는 중이다.
다행히 스켈링은 익숙해지고 있다.
일 년에 두 번만 가면 그래도 이가 심하게 썩을 일은 없겠지 하고 안심 중이다.
문제는 사랑니다. 사랑니도 일찍 뽑았어야 했는데 미루고 미루다 30살이 훌쩍 넘어서 마지못해 갔다.
왼쪽은 모두 제거했으나 오른쪽 사랑니 한 쌍은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심지어 썩어서 이가 시린대도 무서워서 치과를 못가고 있다.
캐나다 이민오고 그래도 많이 나아진 편인데 사랑니는 꼭 한국가서 뺀다.
한국의 치과의사들을 좀 더 신뢰하는 편이다. 이유는 예전에도 한국에서 사랑니를 뺏기 때문에
같은 의사 선생님에게 오른쪽도 맡길 생각이다. 무조건 마취하고 싶다.
전신마취가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을 정도다.
2. 운전 공포증
나이가 30대 중반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 중에 운전 못하는 사람은 드물다.
장롱면허는 의외로 좀 있는데 나처럼 아예 시도조차 안 한 사람은 잘 없다.
나는 서른이 훌쩍 넘긴 나이에도 운전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도 못했다.
운전은 내게 무섭고 두렵기만한 미지의 세계였다.
그러다가 최근 1년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시도했으나
방향 감각도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문제는 공포가 너무 심했다.
떨어진 이유가 Too cautious.
너무 조심해서 떨어져 본 사람 나야 나...
좌회전 우회전할 때도 진짜 자꾸 누군가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쉽게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런 나는 교통의 흐름에 오히려 방해만 되는 존재였다.
조심한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너무 조심하는 게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는데 두려운 마음이 더 커서
속도를 낼 수가 없다. 한국 가서 다시 시도할 생각인데 잘 될지는 미지수?
지금은 막연하게 그냥 하다 보면 되겠지 하고 회피 중이다.
3. 고소 공포증
고소 공포증은 꽤 오랜 시간을 나와 함께 해왔다.
케이블카, 관람차, 흔들 다리를 갈 때면 항상 식은땀이 난다.
내 성격의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지만 극강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잊어버리고 다시 시도하고, 그러다 후회하고의 반복이다.
여행을 좋아하는데 그러다 보면 케이블카, 관람차, 흔들 다리를 타야 할 일이 꽤 있다.
보통 이 불안한 탈것들은 A라는 장소에 도착하기 위해서 꼭 타야 하는 것이라 선택권도 없다.
공포도 있으나 A라는 곳에 가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커서 결국은 가게 되는 것이다.
가끔 짓궂은 친구들이 흔들 다리를 건널 때 흔들거나 관람차에서 뛰는데
난 진짜 그들과 손절할 수도 있다. 관람차에 동행한 사람들에게 난 다급하게 외친다.
"제발 아무도 움직이지 마"
4. 벌레 공포증
벌레가 너무 무섭다. 심지어 예쁘게 생긴 나비도 무섭다.
나비는 괜찮겠지 하고 버터플라이 가든에도 한두 번 가봤는데 나비가 내 앞을 지나갈 때마다
소름이 쫙쫙 돋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 후로 버터플라이 가든은 못 가고 있다.
꽃은 너무 이쁜데 벌레는 무섭다.
바퀴벌레가 나오는 집에서 자취를 한 적이 있는데 나 혼자 잡지 못해서
항상 동생에게 부탁했던 기억이 난다.
바퀴벌레가 벽을 기어 다니는 걸 보고 나서 잡으려는 생각은 절대 못하고
집을 무작정 나와서 정처 없이 돌아다녔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지금 똑같은 일을 겪는다고 그다지 내 대처방법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질 것 같진 않다.
아마 소리를 지르며 남편을 부르겠지...
심지어 조류도 무섭다. 닭 부리나 닭발이 무섭다. 그래서인가 닭발을 먹지 못한다.
이 정도면 안 무서워하는 게 뭔지를 찾는 게 빠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내가 가진 공포를 나열하는 것이 위로가 될지는 사실 미지수이다.
나라면 이런 글이 위로가 될 것 같았다.
나 같은 사람도 출산을 한다고
그러니까 당신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고
이런 글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신은 이미 용감함을 타고난 용사들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5. 두려움의 원천
실질적으로 한 가지 알려드리고 싶은 건
알지 못하는 것은 더 두렵다는 것이다.
출산 vlog 가 넘쳐나는 유튜브 세상.
(나도 겨우 보긴 했지만) 꼭 하나는 보고 가길 바란다.
이미 어느 정도 공포를 예상하고 간다면 그래도 마음의 준비는 돼있을 거니까!
내가 왜 무서워하는지 그 두려움의 원천을 파헤치고자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드라마를 보면 갑자기 양수가 터지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가는 주인공과 가족.
그리고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초산은 양수가 터져도 아기가 언제 나올지는 모르는 일이다.
진통이 없다면 좀 더 기다려봐도 무방하다.
진통이 시작되어도 자궁문이 열리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진통이 5분 간격으로 규칙적이고 1분 정도 유지되고 1시간 정도 진통이 이어졌다면
의사에게 연락을 하고 병원에 가도 늦지 않다는 것!
정말 드물게 자궁문이 빨리 열려서 아기가 나오려고 하는 경우엔 미드와이프가 집으로 와서 도와준다고 했다.
정말 위급한 상황이라면 집에서 아기를 낳는 옵션도 있다는 것이다.
캐나다는 home birth를 하는 산모들도 꽤 많은 편이다.
나도 집에서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병원에서 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집에서 분만하는 것도 캐나다에선 꽤 있는 일인 것 같아 안심이 됐다.
나는 모르는 상황, 미지의 상황에서 더 공포심을 느끼는 편인데
정확히 언제 의사에게 연락을 해야 하고 병원을 가야 하는지 알고 나니
공포가 반으로 줄었다. 여전히 출산의 공포가 존재하지만 내가 진짜 두려웠던 것은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그러니 두려울수록 정확히 자세하게 나의 상태를 알고 대처법을 안다면
두려움이 훨씬 줄어들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곧 언제 진통이 찾아올지 모르지만 아기 얼굴을 곧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기다리는 중이다.
고통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끝나는 것이니까.
시간이 약이다.
세상의 모든 임산부 여러분
무서운 게 당연해요.
모르니까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무사히 끝나 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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