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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이민자의 일상

작은 일도 미루지 못하는 강박/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

by 읽고쓰는사람 2022.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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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박적 성향이 없는 두루뭉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에 잠귀가 밝아 깊이 자지 못하는 것 빼고는 일상에서 예민한 구석은 찾기 힘들었다. 그러나 아기를 낳고 나서 나는 강박의 결정체였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난 상당히 부지런한 사람이다. 일을 할 때도 극강의 효율성을 추구해서 누구보다도 빨리 일을 처리하곤 한다. 생각해보면 난 가만히 누워 쉬는 게 힘들었다. 잠을 잘 자지 못했던 것도 할 일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급한 일도 아닌데 지금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마음이 내내 불편한 것이다.

할 일이 있으면 미루지 않고 해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을 통해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똥을 누고 안 닦은 것처럼 찝찝해서, 아주 피곤해서 죽겠는 상황에서도 그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아가가 이제 70일이 넘었으니 곧 속싸개를 졸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과 다리가 묶여서 자는 걸 보며 근육이 잘 발달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있었다. 이렇게 하나의 문젯거리(?)가 생기면 그것을
당장이라도 해결해야 마음이 편하다.
아마존에 아가가 손발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스와들업을 미친 듯에 검색했다. 가격이 비싸다. 혹시 다른 중고 사이트에 나온 건 없나 또 찾아본다. 있지만 맘에 들지 않는다. 남편에게 물어보고 사야지 하고 잠이 들지만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결국 남편이 아침에 아가 보러 왔을 때
다짜고짜 묻는다.

“나 이거 사야 해 아가가 이제 속싸개를 졸업해야 해서 블라블라 블라~~” 남편이 그럼 사이즈 잘 알아보고 사라고 했고
그러자마자 난 결제 버튼을 눌러 사버렸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진다.

한마디로 그렇게 급한 일이 아닌데 빨리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빨리 끝내고 쉬고 싶다는 마음.
근데 정작 쉬면 또 다른 해야 할 일이 보이고 그러다 보면 잠시도 쉬지 못한다.

블로그에 이렇게 글이라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할 일을 생각하고 하느라
밤엔 녹초가 된다.

성인 adhd인가 싶기도 하고
참을성이 없는 편이고
매사에 너무 급해서 실수가 잦은 편이다.
그것도 훈련을 통해 지금은 실수가 거의 없고
할 일을 엄청 빨리 처리한다. 겉으로는 아주 부지런한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문제는 육아를 시작하면서 남편에게도
닦달을 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한 시간이 있으면 남들이 두 시간 동안 걸릴 일은 나는 다 끝내 버리니 남편이 느릿느릿할 일을 하고 있으면 그걸 보는 내 속이 너무 갑갑해 미칠 지경인 것이다.

남편은 일을 하고 나는 육휴 상태인데
남편은 집에 오자마자 밥을 먹고 아기를 본다.
나는 남편이 아기 보는 동안 집안일을 한다.
집이 어질러져 있으면 마음이 안 좋다. 문제는 남편이 아기를 보다가 힘들다며
아기를 그냥 눕혀놓고 쉴 때이다.
일하고 힘들어서 쉴 만도 한데
그것을 못 보겠다.
나 혼자 하기에는 할 일이 많고
그걸 남편이 같이 해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근데 그 할 일이 꼭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아닌 것이라 남편은 주말에 몰아서 하자고 한다.

그래서 같이 주말에 하자 하고 결론이 나지만
난 또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그 할 일들이 눈에
아른거려서 내가 다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거

왜 미루지 못할까
어제는 오래간만에 아가가 낮잠을 오래 자줘서
할 일이 뭘까 부리나케 생각해서
한국 출생신고해야겠다는 생각에
프린터로 부랴부랴 서류를 뽑았다.

남편은 왜 그렇게 급하냐고 항상 묻는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그냥 마음이 불안하다.
명상도 해보는데 그때뿐
생각해보면 나는 매일 하는 일이 정해져 있고
그 루틴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지만 육아는 아가의 기분에 따라 루틴이 달라질 수 있다. 성장 급등기라는 것도 있고…
갑자기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렵다.
그래서 더욱 잠에 집착하게 된다.



지금은 통잠을 자는 아기지만
나중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갑자기 아기가 새벽에 두 시간마다 깰 수도 있으니까 난 매일 초긴장 모드로 대비하고 또 대비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피곤한 성격이다.
아기가 없을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육아를 하면서 루틴이 깨지고
운동할 시간도 없고
밥도 잘 못 먹다 보니
요즘은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느낀다.

산후 우울증이 조금 심하게 오긴 했는데
두 달이 지나도 여전히 좀 남아있는 것 같다.
아가가 방긋방긋 웃는 모습을 보면서
극강의 행복감을 느끼지만
극강의 책임감도 느낀다. 지금 이 시기에 내가 아기를 위해 할 일이 뭘까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고
가끔은 너무 지나쳐 이게 진정 아기를 위한 건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아기가 조금이라도 그렁그렁하면
콧물을 빼주는데 코딱지가 있는 꼴을 못 본다.
육아 템도 지금 이 시기에 해야지만 아가 발달에
좋을 것 같아 자꾸 사게 되고
남편은 그런 거 없어도 잘만 큰다 하는데
사실 나도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땐
남편에게 공감한다.
아기 발달보다 내 마음과 몸이 편해지길 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모든 게 나의 강박적인 성향 때문이다.
요즘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다 보니 더욱더
집착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루빨리 운동이라도 시작해야겠다. 내가 워낙 항상 각성상태라서 운동도 안 하니 정신이 혼란스러운 것 같다. 육아 전엔 운동을 해서 체력을 쫙 빼놓으니 정신도 건강했던 것 같은데.
아님 그냥 호르몬인가?

나랑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어떤 분들이
지구 상에 있다면 혼자가 아니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서 쓴다. 나도 누군가 봐준다면 혼자가 아니란 기분이 들 것 같아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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