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술. 조금이나마 솔직해질 수 있는 술의 마법

by 읽고쓰는사람 2022. 3. 26.
728x90


술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내가 스무살에 경험한 술은 그랬다. 규율이 엄격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넘어 대학교에 입성한 나는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고 다녔다.
스무살. 모두가 선망하는 나이. 스무살 때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물론 현재의 삶이 너무 만족스럽지만 가끔
스무살로 하루 정도는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스무살은 그야말로 자유였다. 다른 지역으로 대학교를 가는 바람에 나는 부모님의 레이다망에서 거의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약간의 거짓말과 함께.

웅 나 집이지. 지금 집에 왔어


라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친구들과 소맥을 말고 있었음을. 나의 눈치 빠른 친구들은 전화받는 와중엔 투명인간 행세를 해주었다. 그렇게 나의 일탈은 술과 함께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술을 읽으면서 내가 술독에 빠져 살았던 스무살의 기억으로 돌아갔다. 가장 즐겁게 본능적으로 놀았다고 생각하는 그 시절. 술이 맛있어서 먹었던 건 아닌 것 같고 약간의 취기가 오르고 알딸딸해지고 더없이 팽창하는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술은 이상한 용기를 주고 자신감을 준다.
물론 근거없는 자신감이라 모 아니면 도 이긴 하지만.
대부분은 대굴욕, 흑역사를 남기며 마무리 된다. 많은 흑역사를 양산했던 내 스무살은 기억에만 뭍어두려 한다.

김혼비 작가의 글을 읽으면 친구와 수다를 한바탕 떨고 나온 느낌에 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친구들이랑 술 마시며 수다를 떨어본 게 얼마만인지.
임신하고 내 인생에 술이 차지하는 비율이 그래도 좀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됐다. 술 생각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서른이 되고 술 동무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이민을 오면서 술 마시는 자체가 힘들어졌다.

김혼비 작가가 평생의 술친구를 만나게 된 걸 보고
진심으로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만큼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났고 술 취향고 잘 맞는다는 의미니까.

우리 남편과 술을 마셨던 날이 떠오른다.
술이라고 할 것도 없는 맥주 한 캔이었다. 진짜 맥주 한짝이 아니고 한 캔. 그는 맥주 한 캔을 마시고 화장실에 가서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의아해진 나는 화장실 문 가까이로 가서 물어봤지만 “안돼! 들어오지마” 하는 소리와 함께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체질적으로
술을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술 좋아하는 내게 맞춰주려고 맥주 한 캔을 다 비운 것이었다.
맥주 한 캔도 안되는 그의 주량이 원망스러우면서도
억지로 내게 맞춰주려고 한 그의 노력이 안쓰러워
나는 그 이후로 그에게 술을 마시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남편을 만난 이후로 나는 혼술이다.
내가 술을 마시면 남편은 주스나 콜라를 마신다.
남편은 노잼으로 타고 났다. 노알콜 캠핑이라니
노알콜 치킨이라니, 노알콜 바베큐라니.

소주를 처음 따를 때 나는 소리가 좋다는 작가님의
말에 백프로 공감했다. 나는 청하나 백세주를 좋아했는데 소주병과 더 닮은 청하에서 더 경쾌한 소리가 났다.
소주는 맛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맛으로 먹는다면 맥주나 와인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캐나다 면세점에서 파는 아이스와인. 한국에 돌아갈 때 가족 선물로 사가곤 하는데 달달한 맛이 딱 내 취향이다. 사실 가족 선물이라고 하면서 내가 더 많이 마시는 것 같아 찔린다. 칵테일도 내가 좋아하는 술이다.

블러디 메리. 여기 캐나다에서도 인기있는 술인 것 같은데 나는 한 번 마셔보고 독특한 맛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술이라기 보단 차가운 스프가 맞겠다.
김혼비 작가 역시 나와 비슷한 반응이라 재밌었다.
나도 조금 더 마셔보면 익숙해질까 싶기도 하고.

뭐든 달달한 걸 좋아하는 나의 취향은 술에도 마찬가지다. 막걸리가 달고 구수해서 좋다. 캐나다에서도 가끔 사서 먹어본 적이 있다. 막걸리를 마실 땐 아빠 생각이 난다.

임신하고 나니 술 생각이 아주 간절하다.
술 없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보낸 작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임신을 하고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년엔 뭘 마실까 벌써부터 기대된다.

300x250

댓글